현재 엘살바도르 대통령인 부켈레는 수 년 전부터 비트코인에 나라를 걸어버린 장본인이다. 여기서 가치나 변동성 따위를 논하려는 건 아니고, 어쨌든 남들이 안 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개인의 판단에 나라의 운명을 거는 것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겠지만, 그 결단력과 실행력만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역사는 이런 예외를 기록하게 마련이다.
재즈는 즉흥성에 기반한 음악의 한 장르이다. 기존의 음악에서 들을 수 없었던 리듬과 전개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바로 다음에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의외의 연결성을 발견했을 때, 감동이 몰려온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전개를 과감히 도전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안전하게 변주를 하기도 하는 일련의 절차가 재즈를 표상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온 결과인지 과정을 복기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프로그래밍 분야에는 스파게티 코드라는 용어가 있다. 처음 시작을 엉성하게 한 뒤에 필요한 기능이 늘어나는 대로 덕지덕지 코드를 추가하다 보면, 추가된 내용끼리 얽혀서 알아보기도 어렵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원래 기능대로 동작을 하더라도 구조가 꼬여 있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버그가 발생하는 등 기초를 잘못 닦은 잘못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계획되지 않은 선택은 이런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뭐든지 계획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작게는 하루 단위, 길게는 인생 단위로 계획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계획이 한 번에 되라는 법은 없다. 막상 실행해 보면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고, 계획했던 일들도 여러 시점상 점점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과거의 자기자신이 휘갈겨 놓은 계획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이번에 시작한 연재가 딱 그 모양이다. 안 그래도 본업이 매우 바쁜 상황인데, 평소에 쟁여 놓았던 글감들을 활용해서 짧은 시간에 엮어 보겠답시고 3주동안 매일 글을 적어야 하는 챌린지에 신청을 해 두었고, 벌써 5일째이다. 퇴근도 못 한 상황에서 매일 자정 직전에 마음을 졸이며 타임어택을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퇴고 없는 일필휘지이다. 진심이 담기지 않는다면 결국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내용은 없는 껍데기가 될 것이고, 당연히 기억될 가치도 없을 것이다.
첫 단추는 나쁘지 않게 꿰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저장해놨던 글들의 주제를 생각해 보니 각각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잘못 표현했다간 나중에 지우고 싶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선뜻 골라 잡을 수가 없었다. 슈카라는 사람도 옛날에는 블로그를 했다고 하는데, 유명해지고 나서는 블로그 내용을 싹 다 없애버렸기도 하고, 고등학교 동창이 몇 년간 연락도 없다가 온라인상의 자기 기록을 지우려고 요청해 온 적도 있고 한 걸 보면 삭제라는 기능은 양날의 검인 것 같다.
현대의 학술 논문은 한 번 출판되면 수정도 거의 불가능하고 해당 내용에 접근 가능한 공개 디지털 주소가 반영구적으로 남는다. 직업병인건지 아니면 원래 성향이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한 번 표현한 내용은 가급적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고, 앞의 사례들과는 달리 남을 수 없다면 기록하지 않다 보니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기록의 빈도가 매우 적다. 그런데 매일매일 글쓰기에 도전했으니... 일단 확실한건 성향이랑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며칠 밤 잠도 못 잔 상태에서 이런 글을 쓰다보니 평소 필력의 10분의 1도 발휘가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원래의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너무 무계획적이고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 해서 원하는 퀄리티 컨트롤이 되지 않는 것 같아 기획연재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만 일단 시작했으니 지킬 부분들은 지켜보자는 관점에서 원래 신청한 매일 글쓰기는 유지해볼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과정이 기록돼서 나중에 다시 보면 이런 적도 있었지 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의미 없는 시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좀 더 정제된 생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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