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기나긴 3주간의 매일 글쓰기 챌린지가 벌써 마지막 날이다. 원래의 예상과는 다르게 본업이 매우 바빠진 상황에서 작성하다 보니 퀄리티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았거나 초기 의도와 맞지 않는 글들이 양산된 것 같은데, 어쨌든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마무리 단계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평소 성향과 맞지 않던 글쓰기에 도전해 보면서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챌린지의 마지막 글인 만큼 그 동안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 정리해볼까 한다.
원래의 글쓰기 성향
현재 블로그 포스팅 스타일은 '나만이 쓸 수 있는 완성도 있는 글을 내자' 이다. 이전에 봤던 윌리엄 케일린의 말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이 작성할 수 있는 글이 아니라면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할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같은 일에 두 번의 노력이 동원되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의 포스팅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점들을 최대한 넣는 것이 글 작성시에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항이라고 봐도 되겠다.
최근에 보이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창작해내는 결과물들은 감성을 건드리는 것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것이 쓰기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블로그를 일기장 같은 느낌으로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감성의 영역에 있는 글들은 최대한 지양하고, 해당 분야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 봐도 얻어갈 것이 있도록,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정도까지 영혼을 갈아서 쓰는 것이 성향에 맞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10초짜리 영상과 3줄요약의 시대에 역행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런 관점을 가지고 글을 적다 보니 다 쓰고 나서 내가 생각한 것을 충분히 담지 못해서 후회한 적은 있어도 글 작성 자체에 대해서 괜히 썼다고 후회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연스럽게 일상 카테고리에는 거의 글이 없고, 대부분이 깊게 내려가는 글, 그리고 작성 주기는 몇 개월 단위를 넘나들 정도로 글이 뜸했던 것도 사실이다.
매일 글쓰기 도전 계기
그러던 와중, 블로그 관리 페이지에서 3주간 매일 글 쓰는 챌린지를 시작한다고 예고? 광고? 같은 것들이 계속 떠서 약간의 관심이 생겼었다. 평소에도 글을 못 쓰는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 동안 모아 놓은 잠재 주제들도 많으니 하루에 주제 한 개만 골라잡고 써도 3주는 뚝딱이라고 생각해서 사전 예약을 넣어 놨었다. 예약이라고 해 봐야 당일에 알림이 뜨는 것 정도이긴 했지만, 어쨌든 시작한 이상 마무리까지 가보자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챌린지가 요구하는 것은 별 게 아니고, 그냥 주어진 태그를 달고 아무 소리나 한 문장이라도 대충 휘갈긴 다음 발행만 하면 되는 구조였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글을 쓸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자기자신에게 글의 퀄리티라는 추가 제약을 걸었다. 애초에 보상을 노리고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몇 개월 단위로 영혼을 갈아서 만드는 글 하나를 만들어내던 평소 스타일과 다른 방식으로 창작을 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가 궁금했다.
시작부터 삐걱거린, 그러나 어떻게든 완성해낸
1주차
막상 시작 당일, 알림을 받긴 했지만 업무로 인해 도저히 자정 전에 글 쓸 시간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상으로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완료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대충 휘갈긴 다음 발행을 누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첫 날 자정 근처에 시작하여 결국 자정을 넘겨서 글이 완성되었다. 이미 하루를 까먹고 시작하니 약간 김이 샜지만, 어쨌든 하루에 한 번 꼴로 작성만 하면 되는 거니 자정 전에만 완성해 보자는 목표를 삼았다. 그러나 이전 글에서도 다뤘다시피 자정이라는 시간 제약을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자정 이후에도 계속되는 업무 사이에서 일기장같지 않은 글을 억지로 쥐어짜내다 보니 다 써놓고도 굳이 이런 글을 썼어야 했을까 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2주차
결국 의도했던 기획 연재를 중단하고, 그냥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별 포스팅 단위로 마무리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그랬더니 글도 좀 더 수월하게 써지기는 했다. 그러나 몇 번도 되지 않아 주말을 포함해서 업무가 산을 이뤘고, 여유 시간이랄 게 없는 매일이 도래했다. 퇴근도 못한 상태로 11시 50분에 급하게 자리에 앉아서 10분 안에 완성해낼 수 있는 것을 쥐어짜내봤자 결국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폐기하는 것이 연속인 일주일을 맞았다.
3주차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블로그와 업무내용을 완전히 분리하지 말고 업무상 있었던 일들 중 짤막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평소 스타일에 맞춰서 정리해보는 것으로 방향성을 바꿨다. 물론 이전보다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더라도 시간 투자의 비중을 좀 더 높였다. 그랬더니 다시 매일 글쓰기가 가능해졌다.
총평
그간의 기록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전반적으로는 목요일이 통계적으로 자정까지 매우 바빴던 날이구나 를 깨달을 수 있었고, 그 많은 고민들이 체크표시 하나의 정량 지표로 산출되어 나오는 게, 역시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풍토가 여기에도 반영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이번 포스팅의 범주를 벗어나니 생략하기로 한다. 중간에 방황했지만, 어쨌든 결국 매일 글을 뽑아내려면 일상과의 연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방식의 창작이 현재 상황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좀 덜 바빠지면 나아질수도...
댓글 작업장의 습격
이번 시도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이 바로 댓글 작업장이다. 평소에 다작으로 쳐내지 않다 보니 몰랐는데, 이번에 짧은 시간에 많이 만들어내면서 정말 이런 것이 만연하구나를 깨달았다. 나는 댓글로의 소통도 중요시해서 댓글에 로그인 제한을 걸어놓지 않았고, 이것이 대부분의 블로그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티스토리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댓글을 남기거나 공감 버튼을 누르는 데 어떤 재화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보니 아래 캡쳐와 같이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템플릿에 있는 '넉넉하게 머물다 갑니다', '1꾹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따위의 정형화된 댓글을 대충 찍 남기고 가는 사람인지 기계인지 모를 것들이 매일 나타났다. 아마 이 글에도 그런 댓글이 달릴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의 글들은 자체 시스템에 의해 알아서 쓰레기통으로 버려지기는 하지만, 비공개로 체크된 것들은 걸러지지 않는 등 댓글 관리 알고리즘이 완벽하지 않아서 여러 모로 실망스러웠다. 개인적인 추측이긴 하지만 이런 댓글들의 목표는 공개 댓글인 경우 이름을 누르면 자기네 블로그로 이동되기 때문에 주목도가 높을만한 글들에 간접적으로 링크를 남겨서 조회수를 뽑아먹으려는 것 같고, 비공개로 하더라도 적어도 블로그 주인은 눌러볼 수가 있기 때문에 결국 효과는 같다. 그래서 죄다 삭제하거나 휴지통에 넣어 버렸다.
몇 년 전에 봤던 중국의 사례에서도 결국 댓글공작이라는게 무언가 음해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네가 띄우고 싶은 글에 가서 긍정적인 댓글로 도배를 해 버리면 그 외의 다른 정보들이 희석되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확한 위치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서울대 국제대학원 조영남 교수가 말하는 10시간짜리 중국 총정리 영상 안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다.
규모가 작거나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블로그의 경우 이런 댓글 하나라도 달린다는 점에 마음이 동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스팸일 뿐이기 때문에 신경쓰는 순간 말려드는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고, 평소에도 스팸 이메일을 많이 받는데 '당신을 무슨무슨 학회(이름도 못 들어본)에 초대합니다', 또는 '우리 학술지에 편집위원 또는 편집장으로 초대합니다', '당신의 아이디어를 우리 학술지에 게재하세요' 따위의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중요한 내용에 집중하는 시간을 뺏기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티스토리가 강제 자체광고 광고 뭐시기를 끼워넣은 시점 이후로 슬금슬금 늘어나다가, 얼마 전 블로그 글의 번호를 블로그별로 1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 글처럼 갑자기 7만 몇천으로 시작하는 URL로 바뀌기 시작하면서부터 극심해진 것 같다. 내부적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고리즘이 바뀐 것은 확실하다.. 앞으로도 댓글 관리를 개선한다고는 하겠지만 보나마나 이전처럼 깨끗하게 돌아갈 방법은 아마 없을 것 같으니 또 개인 차원에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참고로 자체광고도 계속 추가되어 나의 광고 숨기기 스크립트도 점점 불어나고 있다. 책임요소를 개인에게 돌리는 행태는 이전부터 카카오라는 기업을 봐 왔지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고, 스팸댓글도 이와 마찬가지로 결국 개인이 걸러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의 제약
두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내용은 시간 제약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이다. 글을 써내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문제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처럼 직장 다니면서 취미로 블로그를 하는 일반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다. 특히 현재 상황이 자는 시간 제외하면 대부분이 출근 상태인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잠도 침대가 아니라 사무실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생에서도 신경써야 할 일이 매우 많은 상황에서 본업도 창작, 취미인 글쓰기도 창작, 다른 취미인 작곡도 창작이니 뇌가 쉴 틈이 없다.
사실 시간 제약을 24시간으로 하는 챌린지는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Andrew huang 이라는 사람이 몇 년 전에 진행했던 4 Producers flip the same sample 이라는 것인데, 시간 제약 24시간을 걸고 여러 명의 작곡가가 하나의 음원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음악을 만들고, 이후 서로의 결과물을 공유하며 인상적인 부분들에 대해 반응을 해 주는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대표적으로 사운드 디자인 측면에서 롤 모델로 생각하는 virtual riot이 출연한 영상이 있다.
이 작곡 챌린지도 처음에는 24시간이라는 시간 제약 안에서도 어떻게 이런 결과물을 뽑아낼 수가 있지? 하는 참신한 음악들이 주를 이뤘으나,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의 섭외에도 실패하고 소재도 고갈되는 등 용두사미로 끝나는 느낌이 강했다. 24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결과물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고, 애초에 muse는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창작의 영역에서는 쥐어짠다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가끔 블로그를 방문해 주는 사람들 중에 어떻게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평소의 글쓰기 프로세스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1. 평소에 생각을 끊임없이 하다가 정리할 만한 주제가 나오면 약간의 설명과 함께 기록
2. 언제쯤 글을 써야겠다는 계획과 함께 사전 조사를 오랫동안 함
3. 글 쓸 주제에 맞는 내용만 뽑아서 나의 스타일에 맞게 개요로 재구성
4. 개요에 맞게 글을 작성. 파트별 분량 분배에도 신경 씀.
5. 다 쓰고나서 마음에 들 때까지 퇴고.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함.
이 글도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짧게 적고 끝내려고 의식의 흐름으로 술술 쓰다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제대로 체계를 정하고 싹 밀고 다시 썼다. 이러다 보니 애초에 24시간 안에 모든 절차를 다 돌려서 하루에 한 개씩 찍어내는 데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뭐 반복하다 보면 숙달되겠지만, 이걸로 돈 벌 것도 아닌데다 결국 본업에서 해내야 하는 것은 내 생각을 일필휘지로 적는 것이 아닌, 수없이 많이 쌓여왔던 선행 연구자들의 결과는 인용만 하고, 그것보다 더 나은 점을 요약해서 필요한 내용만 적는 논문이다.
블로그 글을 써 내는 것이나, 논문을 써 내는 것이나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고 생각하는데, 창작의 영역에 시간 제약을 거는 것은 완성도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나 생각이 다른 경우 댓글 등으로 남겨 주면 감사하겠다.
결론
티스토리에서 3주간 매일 글쓰기 챌린지를 참여한 김에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마지막까지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성향에 맞지 않는 글쓰기를 강제로 하다보니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간 들었던 생각들을 약 2시간에 걸쳐서 정리해 보았고, 역시 시간을 투자해야 괜찮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블로그의 부제인 '바쁜 나날들 사이에서 생각났던 이런저런 것들을 적어봅니다.' 라는 내용과는 달리 정말 바빠서 숨 돌릴 틈도 없는 타이밍에 적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앞으로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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