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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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

KAIST에 온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강연 후기

Eli♪ 2025. 5. 28. 03:40

강연 시작 전까지의 이야기

평소 출퇴근하던 길을 걷는데 나무 사이에 걸린 플래카드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KAIST에 강연을 온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4월 대통령 탄핵 선고를 생중계로 보기도 했고 이후에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헌법재판소와 헌법, 그리고 문형배 개인에 대해서 다루는 것을 많이 접해서 어느 정도는 익숙했지만, 과학기술에 대해 발언한 것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좀 더 관심이 갔다. 공개강연이라서 사전 신청을 받는다든가 하는 건 없었고, 이후에 받은 이메일에서도 제목만 있고 강연내용에 대한 요약문 같은 게 전혀 없어서 과연 일생을 판사의 길만 걸어온 사람이 과학자와 공학자에게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매우 궁금해졌다. 

 

달력에 적어놓고 2주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오늘 강연을 들으러 강연장으로 향했다. 대학생 때 교양과목 수업도 듣고 했던 강의실이라서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방 크기가 작아서 몇만 명한테 이메일로 뿌린 공개강연에 사람이 꽉차서 다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앞 일정이 없어서 강연 시작 25분 전에 도착했는데, 언론들도 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는 달리 딱히 언론사 차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 내에는 아무래도 안전 문제 때문인지 강의실 입구에 경찰들도 배치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고 통상적인 강연장 분위기였다. 빨리 온 덕에 자리는 절반 정도만 차 있었고, 입구에서 책자를 집어들고 단상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연장이 꽉 차고 결국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뒤에 서있거나 통로에 앉는 등 예상된 상황이 펼쳐졌다.

 

남는 시간 동안 입구에서 집었던 책자를 읽었는데, 첫 장부터 한자가 섞인 딱 봐도 어려워 보이는 문서였고, 법 조항과 판례까지 섞여 있는 13쪽짜리 딱딱한 글이라 읽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참고자료일 것으로 생각하고 큰 그림만 파악했는데, 내용은 현행 헌법의 한계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문서로 첨부하겠지만, 솔직히 읽어도 이걸 가지고 한 시간 반짜리 강연에서 무슨 말을 할지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법이나 인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았어서 사전에 질문할 거리를 생각해 보았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참신한 질문은 없었다. 그래도 KAIST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니 좋은 질문과 현명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나름 기대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예정된 강연 시각에 딱 맞춰서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옆 통로를 통해 문형배 씨가 걸어들어옴과 동시에 강연장 전체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인간미와 합리성, 그리고 영리함을 확인할 수 있었던 강연내용과 질의응답

사회자의 짤막한 소개 이후 강연이 진행되었다. 위 사진과 같이 검은 화면 앞에 단상과 마이크 하나만 놓고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 이후 인터뷰를 최소화한 것은 언론에 자주 노출되어 왈가왈부하는것보다는 의견이 달랐던 사람들이 결과를 받아들일 시간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분이 있는 헌법 연구관의 강력한 추천으로 KAIST에 오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흔치 않은 강연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후 이어지는 내용을 듣다 보니 아까 가져왔던 책자의 내용 순서대로 전개되는 게 아닌가? 참고자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강연 요약문이었던 것이다. 약 한 시간 동안 책자의 내용대로 개인으로서의 문형배가 살아온 길과 자세, 사법계가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법관으로서의 문형배가 과학기술계를 대하는 태도 등등을 사례 위주로 쭉 펼쳐 보였고, 이어지는 질의응답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전부 답하면서 정말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강연과 질의응답 중에 여러 웃음 포인트들도 있어서 전혀 딱딱하지 않았고, 질문의 수준도 매우 높았다. 

 

때로는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감당할 수 없는 선택 대신 본인의 역량 하에서 대안을 찾은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도 있었고, 그리고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해 신뢰하고 과대평가나 과소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합리성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반증 가능성을 열어놓고 토론을 통해 절충점을 찾아가는 자세와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에서 아 역시 똑똑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강연 내내 강조한 관용과 자제를 실천하기 위해서 상반된 의견이라도 공유하는 부분을 찾아서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상대방이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을 기다려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은 여느 매체에서 접할 수 있었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외에도 강연 중이나 질의응답 중에 본인의 블로그를 열심히 홍보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트위터 같은 단문 SNS는 내용이 왜곡되어 전파되는 경우가 잦아 올바른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다 접었다고 한다. 그리고 KAIST 총장과 페이스북 친구라고 하면서 총장을 정말 만나보고싶었는데 마침 잘 왔다고... 강연을 들었던 다른 사람들도 느꼈겠지만 왠지 이게 본 목적인거 같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과학계에 하고싶은 말을 해 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노벨상 수상소감에 내 이름을...' 이라는 얘기도 관전 포인트였던 것 같다.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사람들이 박수를 크게 쳐버려서 이후 내용을 말하지도 못한 건 덤.

 

강연 중에 은근슬쩍 와서 빈자리에 앉은 KAIST 총장의 모습과 강연 이후에 드디어 만남이 성사되는 모습 (사진을 찍었는데 하필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이 둘의 만남을 가려버렸다...)을 다음 사진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별히 기억나는 내용들

강연에 집중하기 위해 따로 내용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기억나는 내용과 사견을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부채감(負債感)과 메타인지

강연 앞부분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법관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부산 지역 법관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 헌법재판관이 될 때의 포부, 그리고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삶과 은퇴한 이후 현재의 자세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서울대 법대생 시절 동아리 선배가 시위하러 나가는데 불법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맞느냐는 고민 끝에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야기, 그리고 험지에서 일하는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재판관을 선택한 이야기와 함께 당시의 생각들과 현재 시점에서의 소회를 다뤘다. 결국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부채감은 있지만, 그럼에도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내용과 그것을 실제로 이뤄낸 점에서 메타인지가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움과 생각을 모두 해야

강연 내용 중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 언급되었다. 실제 사례로 본인이 판사 시절에 법정에서 제출된 증거만으로 판단할 수 없던 요양원 건축불허가 처분 취소 사건에서 현장 검증을 하고 판결 결론을 바꾼 내용을 예로 들었다. 이 내용을 듣고 드는 생각이 이전에 언급한 바 있던 3줄요약과 결론만 바라는 시대흐름에 대한 소감이었다. 과정을 생략하니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은데, 이럴 때일수록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려는 노력, 그리고 주어지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과학기술계의 행동력에 관한 쓴소리

강연 중과 질의응답시간에 공통적으로 과학기술 예산 삭감에 대한 이야기와, 의대정원 증원에 대한 의료계의 대응에 관한 얘기가 나왔고, 문형배 씨는 의료계는 이렇게 행동하는데 당신들은 R&D 예산 삭감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느냐 라고 반문했다. 이외에도 과학계가 영향력을 가지려면 정치에 더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이런 내용들을 듣고 생각나는 사례가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비교적 최근이기도 하고 현재 나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위 KAIST 졸업식 입틀막 사건이다 (관련 뉴스 영상). 작년인 2024년 2월, 대통령이 건전재정을 외치며 과학기술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고 통보가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KAIST 졸업식 행사가 열렸다. KAIST는 오래 전부터 학 석 박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행사 중 총장이 몇 시간에 걸쳐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졸업장을 직접 수여하는 관행이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 자리에 대통령이 온다고 해서 며칠 전부터 소문이 돌았고, 하필 나는 졸업식이 거행되는 바로 옆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건물 옥상에 저격수가 배치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점심 먹으러 갈 때부터 사복 경호원들이 길을 통제해서 빙 돌아가야했기도 하고, 평소와는 달리 대통령 한 명의 경호를 위해 졸업생들이 학위복 입은 상태로 금속탐지기와 몸 수색을 통해 한명한명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은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은 사실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아무 것도 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예산 삭감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를 낸 졸업생은 결국 행사장 안에 있던 사복 경호원들 손에 입을 틀어막혔고 끌려나갔다. 나는 당시에 바로 옆 건물의 사무실에서 유튜브로 실시간 송출되는 영상을 직관했고, 옆 자리 동료 대학원생 중 졸업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현장에서 직접 본 내용을 공유해 줬기 때문에 거의 사건 당사자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 사건 이후 다들 분노했지만 지나고 보면 의미있는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총장 또한 이 사태에 침묵하여 흐지부지되면서 결과적으로 예산은 삭감되었다. 2025년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도 당초 계획과 달리 예산과 연구기간이 삭감되었지만 목표를 맞추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위에서 통보했는데 연구책임자가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서 공동연구자인 내가 의견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현재 삭감된 예산으로 협약이 확정되었다. 

 

두 번째 사례는 대학교 1학년 때인 2011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에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었는데, KAIST 학생과 교수의 연쇄 자살사건이 있었다. 나는 일반고 출신에 갓 입학한 1학년이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주변 친구들의 친구 또는 선후배가 당사자들이라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친구들이 장례식에 참여하러 가는 등 대혼란이 있었다. 이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Anyway goodnight 사건 및 총장건물 1인시위에 대한 백도어 사건을 옆에서 보면서, 그리고 그 1인시위 당사자는 결국 다방면의 보이지 않는 압박을 통해 제적당하는 것을 보면서 행동하는 것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었다. 다행히도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많은 논의들을 통해 징벌적 등록금 제도 등등 다양한 부분에서 개선이 이루어졌고 그 때 행동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

 

세 번째 사례는 중학교 때인 2006년까지 기억을 되돌려야 한다. 오래 된 일이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데, 나는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2학년 담임이 미술 선생이었는데 5.18 당시 전남대 학생으로서 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었고, 수업 중 집중도가 떨어질 때마다 5.18 당시의 숨막히는 순간들을 학급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일이 잦았다. 계엄군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알고 급박하게 전화연락을 돌리는 이야기부터, 총을 들고 건물에 숨어있던 이야기 등등 생생한 경험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광주에서 초중고를 나오면서 이렇게 5.18 당시 행동으로 직접 참여했던 전남대 사범대 출신 교사들을 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나라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 보기도 했다.

 

이 모든 기억들을 종합하면 나는 파격적으로 행동할 깜냥이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해 보자면 최근의 행동으로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작년 총선에서 황정아 박사를 국회의원으로 투표하려고 했던 일이다. 이전에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절부터 주목해 온 사람이었는데 정치인이 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침 투표 안내문에서 이 사람을 발견해서 과학기술계를 올바르게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총선일에 투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투표용지에 해당 인물이 없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거주지 기준 투표 지역구가 달라서 해당 투표용지를 받지는 못했었다. 어쨌든 다행히도 해당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하나는 올 초에 국민의 의견을 직접 수집해서 녹서로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정책을 수행하자는 취지의 모두의 질문 q 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학계에서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내용에 대해 게시글을 작성했던 것이다. 당시에도 연구 제안서를 쓰느라 바쁜 와중이었는데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내용을 작성했고, 다행히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현재 차기 정부로 유력하게 예상되는 정당 기조와 부합하는 내용이라 건설적인 방향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비록 행동 자체는 사소할 수 있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고, 문형배 씨의 인생사 언급처럼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행동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변명을 해 본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이 아니고, 과학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

강연 내용 중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질의응답 시간에 과학기술은 중립인데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행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문형배 씨는 발끈 하며 원자폭탄 개발에 관한 오펜하이머의 예와 순수한 자연물(物)은 없다는 예를 들었고 과학 기술이 중립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과학 기술이 가치중립이라는 말은 정치인이 하는 얘기이지 과학계에서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리고 과학 기술이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해서까지 개발하는 과학자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결과에 대해 몰랐다면 무지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된다고 답변했다. 나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나도 학창 시절에 과학 기술의 가치중립성이 어쩌고 하는 얘기로 배웠던 것 같은데, 배울 당시에도 불편했고, 박사학위 연구에서 내가 개발한 체내 비타민 D 합성을 위한 웨어러블 자외선 광원 기술의 안전성과 효과가 상충되는 지점에서 굉장한 고민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게 된 것 같다. 애초에 중립이라는 것은 허상이고, 개발자 스스로가 이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한다고 본다. 비록 질문은 정제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KAIST에 왔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던, 일반적으로 기자들이 판사에게 질문하지 않는 점에 대한 중요한 답변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를 세상에 맞추지 말고, 세상을 과학자에 맞춰라

강연 내용 중 에이즈 환자의 에이즈 예방법 위반 처벌 조항에 관해 과학적 사실을 적용한 헌재 판례(2023. 10. 26. 2019헌가30) 예시, 성폭력범죄 피해자 권리에 관하여 반대심문을 허용하는 기술을 도입하여 진술녹화제도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결국 적용되지 못한 판례 (2021. 12. 23. 2018헌바524) 예시, 그리고 탄소배출 감축 목표설정 및 시기에 관해 타 국가와 달리 중간 목표를 추가 설정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판례 (2024. 8. 29. 2020헌마389) 예시 등을 들어 과학 기술의 발전이 사법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그리고 아직 과학기술에 대해 신뢰가 부족하여 최종적으로는 결과를 바꾸지 못한 상황이 언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냐는 질문이 나왔고, 판사의 판결과 과학기술의 신뢰는 결국 방법이 다를 뿐 다른 사람을 설득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어서 비과학적인 세상에 과학자를 맞추지 말고, 세상을 과학자에 맞추라는 조언도 있었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결론이 확률로 나오는데 신뢰 기준을 어떻게 정하냐는 질문에 표준은 과학자가 직접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답변이 있었다. 종합하면, 과학기술의 신뢰에 관해서는 외부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과학계가 직접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는 조언이었던 것 같다.

 

종합

KAIST는 국내에서 과학기술에 관해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부터 중요 인사들이 과학기술에 관한 의지를 표명할 때 자주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고,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고. 또한 교육부 산하에 있는 서울대와는 달리 과기정통부 산하 기관이라 교육부에 덜 휘둘리는 부분도 있고, 정부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낮아서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정부에 대해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KAIST에 기부를 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특히나 겉으로는 과학을 부르짖었으나 실제로는 반과학을 실천한 대통령의 탄핵 인용 이후 조기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중요한 시점에서 탄핵 심판 당사자이자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전 헌법재판관이 KAIST를 방문하여 과학기술과 법의 상호작용에 대해 논한 것은 정말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된 것 외에도 강연내용과 질의응답 시간에 다양한 관점에서 중요한 얘기들이 많이 오갔는데 이러한 현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이 있었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확인받는 자리기도 했지만 과학계가 좀 더 책임있는 자세로 행동해야 한다는 과학계 외부 시각의 조언에 대해 반성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추가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검색 포털에 기사를 검색해 보면 아직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이 글 서두에 언급했듯 강연장에 언론사 차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점에서 언론의 과학기술계에 대한 관심도에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만약 그것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 기록이 오늘의 일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단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강연 책자 스캔본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용 및 권리는 원 저작자에게 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4f19s2EgLInbkEb9ksNTbPn9NFRThTE/view?usp=sharing

 

문형배_KAIST강연책자_2025052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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