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의 여백

바쁜 나날들 사이에서 생각났던 이런저런 것들을 적어봅니다.

일상./생각

기획연재 - 02. 저널리즘. 무엇이 보존되는가?

Eli♪ 2024. 11. 10. 23:57

영상 매체가 주류가 되어버린 2020년대에는 구독자 수가 곧 영향력을 의미하는 지표가 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모을수록 생각의 전파는 더 쉬워진다. 다만 시청자의 수준도 높아져서 예전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 보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물론 그만큼 더욱 지능화된 딥페이크 등이 등장하여 진위여부의 분별이 어려운 계층과의 격차는 더 커지는 부작용도 있기는 하다.

 

대부분의 정보는 시한부이다. 같은 내용으로 오래 갈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후대에게 선견지명이라고 불릴 수도 있고, 혹자는 그것을 진리라고 믿게 될 지도 모르겠다. 사견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정보의 수명은 대체로 짧아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실만 기록하면 오래 갈 수 있을까?

 

사진기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록하는 장치다. 그런데 객관성을 담보할 것만 같은 이 특성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심지어 이 개성을 살려서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사진작가라고 부른다. 사진도 이 정도인데 글을 포함한 다른 매체들은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주관이 섞이지 않을 수 없다.

 

선조 실록은 버전이 두 개이며, 삼국시대나 중국의 기록들과는 다르게 둘 모두 정사이다. 현명했던 당대의 사관들은 수정 후에도 수정 전 버전을 그대로 남겼기 때문에 비교 분석이 가능해졌으며, 어떤 의도로 수정이 이루어졌는지가 투명하게 드러나서 오히려 후대의 관점에서 내용의 신뢰도가 높아지는 결과가 되었다. 현대의 과학 기술을 적용하면 검증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신성성을 위해 이를 거부하는 유럽 모 나라 왕실의 기록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거대 언어 모델에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소수 언어의 보존이다. 부가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소수 언어까지 포괄하는 일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고 어쨌든 비교 우위상 좀 더 많은 가치를 포함하는 정보는 더 길게 보존되며, 그렇지 못한 정보에 대해서는 사실상 자본 논리에 의해 소외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정보의 보존 측면에서 이미 인류가 매일 생산해내는 정보 총량은 사람이 직접 분별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지 오래이며, 남길지 말지 결정하는 대부분의 판단을 자동화 알고리즘에 맡기고 있다. 즉 흔히들 말하는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이렇게 선택된 정보가 보편성을 대변할지는 모르겠지만, 객관성을 담보하느냐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이제는 세 줄 요약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엑기스를 극한까지 짜내서 남는 내용만 흡수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 경우 맥락은 비가역적으로 거세되고, 메시지만 남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3배속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풀버전 시청을 선호하는 편인데, 다수의 생각은 이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내용이야 어찌 됐든 제목을 잘 지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